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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서 설교

67. 여호와의 땅에 빛날 일(슥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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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2-06 11:05 조회501회 댓글0건

본문

67. 여호와의 땅에 빛날 일(슥9:9-17).

  하나님은 당신의 땅에서 빛나게 살 수 있는 백성을 위하여 어떻게 역사한다는 것을 스가랴선지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땅에서 빛나게 되는 일을 목적한다는 이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신자가 죽어 천당만을 목적하고 이 땅에서 빛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선지는 육적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을 받고 돌아올 때 묵시로 본 것은 전부가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되는 일을 보여준 묵시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해서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1. 예수께서 나귀 타고 오심으로 되는 일 (슥9:9)

  만일 예수께서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이 되었다면 성경이 그대로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귀를 타신 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을 보인 것이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길은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이루기 위한 왕으로서 상경했던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은 그때 단번에 예수님이 왕이 되는 줄 알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모든 대중은 예수가 왕이라고 호산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어긋났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볼 때 절망 낙심해서 원망하고 욕하며 침을 뱉고 비웃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즉 진리를 모르는 인간들이 호기심 명예심에서 날뛴 것뿐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자기네 나라에서 왕이 되고 세계를 다스린다는 신앙관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본문 성경인 슥9장 9절 이하를 똑똑히 알았던들 그렇게도 낙심해서 넘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성경에서 일점일획도 어기지 못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을 자기 욕망에 채우는 허영심에서 날뛰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스가랴9:9에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온다는 것만 보고 그 아래는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금일도 성경을 이와 같은 상태에서 자기 주관에 붙이는 신앙이란 어려운 일이 올 때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2. 이방에 화평을 전하는 역사 (슥9:10)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리스도로 먼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한 후에 그 정권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르고 세계를 통치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방인을 짐승같이 보는 과오를 범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교인들은 이방은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흑암에 빠져 있던 것입니다. 만일 바리새교인들이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았던들 바울은 그다지 박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위 전통을 찾는 바리새교인들은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하여 염병 같은 놈이라고 했습니다. 금일도 성경을 자세히 읽지도 않고 남을 비판하는 자는 바리새교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3. 언약의 피로 구원하는 역사 (슥9:11-12)

  하나님이 이 세계의 땅을 빛나게 하는 역사는 언약의 피를 인하여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올라오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성경을 모르는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그 피로 죄에서 구원하는 일이 있고야 예수가 왕이 된다는 것을 믿지 않고 그대로 살아서 왕이 된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금일까지 이루어진 역사는 9절-12절까지 해당된 역사라고 봅니다.

4.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켜 이방을 치는 역사 (슥9:13-14)

  이것은 종말의 사명을 가르쳐 말한 것입니다. 이날까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서 죄인을 구원하는 역사는 원수를 치는 역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원수의 세력을 치되 용사의 칼같이 역사해서 치는 것입니다. 만일 금일에 종말적인 역사가 있어야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헬라적인 문명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협상적인 기독교 사상운동을 한다면 이 말씀과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5. 여호와께서 백성을 호위하는 역사 (슥9:15)

  하나님은 이방의 세력을 용납치 않고 치는 역사를 할 때 당신의 백성이 절대적으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호위를 한다는 것입니다(단12:1). 다니엘선지도 북방의 세력이 남방을 침노하는 때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호위하기 위하여 미가엘 천사를 동원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호위해 주겠다는 데도 불구하고 원수를 무서워하고 원수와 타협을 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6. 양떼같이 구원하는 역사 (슥9:16)

  이것은 영적 구원을 말한 것은 아니고 적군인 원수의 피가 강같이 흐를 때 자기의 사람을 목자가 양을 보호함 같이 구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때 구원을 받는 자는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고 형통하며 아름다움이 크게 이루어지므로 소년과 처녀들이 건강을 얻어 복된 땅에서 장수하며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결 론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시대와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와 하나님의 역사를 잘 구분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되는 일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스가랴선지를 통하여 기록할 때 어떻게 여호와께서 역사하므로 여호와의 땅에 빛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본문은 순서 있게 말한 것이니 우리는 빛나는 일의 축복을 받으려면 절대 이방의 헬라적인 사상과 맹렬히 싸우는 용사가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헬라라 하는 것은 속화된 문명을 가르친 것이니 다니엘 8장에 바사의 문명을 수양으로 말했고 헬라의 문명을 염소로 말한 것은 사상을 보여준 묵시라고 봅니다. 바사는 스룹바벨의 역사를 적극 후원하고 승리하도록 스룹바벨에게 권리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헬라를 친다고 한 것은 종말의 기독교의 헬라적인 사상이 교회를 망친 것이니 이것을 용납치 말고 쳐야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금일의 종교 위기는 헬라적인 사상이 강단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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