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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신학

16. 요한 1서 3장. 성도의 소망과 성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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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10-04 10:55 조회1,309회 댓글0건

본문

16. 요한 1서 3장. 성도의 소망과 성결

* 요절 3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강해) 누구든지 주를 향하여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생활하는 자라면 율법을 초월한 중심 성결에서 조금도 흠과 티가 없이 살아 보려는 신앙 양심에서 거짓이 없이 살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소위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 정욕에 따라 움직인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소망에서 체험적인 생활을 못하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체험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감히 알 수 없는 중심 속에서 성결이라는 것을 소유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 강해) 성도의 소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완전한 자녀라는 명분을 받게 되는 것이니 이 비밀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비밀의 진리에서 되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알게 된다는 것은 택한 자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완전한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분명히 믿어지는 데서부터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큰일이고 오묘한 일이기 때문에 세상이 알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은 택한 자만이 압니다. 예수죽여서 산 것이 제일 큰 사랑입니다. 능력의 신이 자녀 삼았으니 능력 받습니다.

*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 강해) 소망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꼭 같이 된다는 것이니 우리가 지금 중생을 받고 성신을 받은 것은 완전히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령으로 역사하다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몸이 되어 승천하였고 승천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성령을 받고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충성을 다 하던 자를 당신의 몸과 같이 만들어서 완전한 성도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재림의 주님으로 오시는 것은 우리를 당신과 같이 만들어서 신부삼아 당신과 같이 영원히 살자는 것입니다.

*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강해) 누구든지 주를 향하여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생활하는 자라면 율법을 초월한 중심 성결에서 조금도 흠과 티가 없이 살아 보려는 신앙 양심에서 거짓이 없이 살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소위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 정욕에 따라 움직인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소망에서 체험적인 생활을 못하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체험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감히 알 수 없는 중심 속에서 성결이라는 것을 소유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같은 사람이 되려면 중심에서 율법을 초월한 성경을 이루게 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깨끗하게 살고 소망이 확실하니 죄 지으라 해도 안 짓습니다.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누가 알아주든지 말든지 충성하게 됩니다. 예수 같이 된다는 소망이 있는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신앙이 장성하면 세상에 끌리지 않습니다.

 # 소망과 성결(요일서3:1~3).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적에 특수한 것은 소망입니다. 소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 외에 동물은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로 소망을 잃고 보니 금수보다 더 악해 진 것이 인간의 타락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신 것은 소망을 잃은 인생에게 산 소망을 주는 동시에 자동적인 성결이라는 인격을 가지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을 기독교의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소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3:1).
  우리의 소망은 영생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데서부터 싹트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생의 씻음을 받을 때부터 확실한 증거로 받은 것입니다(롬8:5-17). 증거라는 것은 성신이 오셔서 아버지를 찾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생의 기업을 상속할 권리를 받은 것입니다.

2. 주 예수님과 같이 될 소망입니다(3:2).
  우리는 자녀 된 것으로만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자녀 된 자로서의 자기가 할 직책을 다할 때 아버지께서 큰 사명을 맡기어 역사하도록 하되 예수님과 동등한 왕권을 받도록 해준다는 것이 종 된 자의 소망입니다. 첫째아담과 같이 죽게 되었던 몸이 예수님의 몸과 같이 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3.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는다는 소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특권이 있으니 요청을 얼마든지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이 우리의 풍부한 소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주마는 약속이 있는 동시에 구하는 자에게만 준다는 것이니 하나님 앞에 담대히 구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지 않고 깨끗하게 살라고만 한다면 이것은 세상 도덕적인 의식적인 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완전한 소망을 줌으로써 산 생명의 생활이 있는 행동에서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양심 중심 사상 생활이 깨끗해지는 것을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성결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 신자로서 중심에 불결한 마음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소망을 얻은 자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 3:4~5.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강해) 우리는 죄와 싸우는 생활이니 죄라는 자체는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불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탈선된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그 죄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세상 죄를 지고 어린양의 몸으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 중심의 성결을 위하여 성령으로 역사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승리하도록 역사하는 것을 주의 역사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오신 것은 죄를 짓지 말라고 온 것이 아니고 죄를 없애려고 오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는 인간성, 죄악성까지 완전히 죽어집니다. 예수가 내 마음에 있으면 평안하고, 겸손하고, 깨끗하니 죄 지을 수 없습니다. 곧 죄 자체가 불법입니다. 죄를 완전히 없앱니다. 세상 죄 없애기보다 내 주심의 죄 없애기가 더 힘듭니다. 세상 죄는 원자탄 한방이면 되고 우리는 살리면서 없애자니 더 힘이 듭니다. 죄를 이기려고 싸우다가 거슬려지는 수는 있습니다. ① 과거의 지은 죄를 없애고 ② 몸의 죄를 없애고 ③ 세상의 죄를 없애면 성도의 세상이 옵니다.

* 3:6~8.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 강해) 우리는 주안에서 거할 때에 죄를 이기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신자라 하면서 죄의 생활을 계속한다면 분명히 그리스도를 바로 안 자로 볼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받는 구원을 말하면서 타협적인 신앙 노선에 있다면 이것은 마귀 미혹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죄와 싸우다가 혹 실수가 있다 하여도 주님은 대언 기도하심으로 그 죄를 이길 수 있게 역사해 주십니다. 이것은 택한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이시니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사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범죄에도 잠간의 실수도 있고 고의적인 범죄도 있으니 중심은 깨끗하나 마귀로부터 오는 세력을 자기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자도 있고 짐짓 중심에서 계획적인 범죄를 하는 자도 있으니 이와 같은 자는 가인과 같이 그 영이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우리가 범죄치 않으므로 범죄치 않는 것이 아니요, 주안에 들어감으로 범죄치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품안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니 미혹입니다. 미혹은 믿으면 구원받는 다고 말하면서 죄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안 지을 수 있나 하는 것도 미혹입니다. 중심은 깨끗하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을 이길 수 없는 자도 있고, 혹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죄인 줄 모르다가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죄의 세력에게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에 실수가 있고 참지 못하여 혈기를 내는 수가 있으니 짐짓 짓는 죄는 안 짓습니다. 짐짓 중심에서 계획적으로 범죄하는 자도 있으니 가인과 같이 용서 받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죄를 지으면 벌써 마귀에게 속했습니다. 죄를 절대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용납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① 마음에 죄 없으면 중심 성결 ② 몸에 성결 오면 변화 승천 ③ 땅에 죄 없애면 새 시대입니다. 은혜시대에는 마음에 죄를 없애고 재림 기에는 몸에 죄를 없애고 심판 기에는 땅에 죄를 없앱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에게 들어오므로 죄를 없앱니다.

  # 마귀 일을 멸하러 나타난 예수(요일서3:7~8).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것은 마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도 일할 수 있게 허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로서 충성과 진실을 보자는 것이었으나 인간들이 모두 마귀에게 먹힘을 당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슬퍼하는 것보다도 마귀를 없애자는 진노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귀의 일은 무엇인가 하는데 대하여 본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범죄 하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7).
  인간이 미혹을 받는다는 것은 중생한 자녀를 미혹하려는 마귀에게 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중생치 않은 마귀의 자녀는 미혹을 할 나위조차 없는 것입니다(4-7). 미혹이라는 것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이 나게 만드는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에 붙여서 해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믿음이란 문제를 가지고 자기 어떤 주관적인 소욕에 붙인다면 믿음도 유혹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2. 의로운 일을 미워하는 일입니다(12).
  사람이 의를 사랑하면서도 미혹을 받는 죄도 있고, 의를 미워하여 악에 속한 자도 있는 것이니 고의적으로 의를 박해하고 의를 미워한다는 것은 마귀에게 완전히 속한 자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인의 범죄라는 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의 도성인신을 부인하는 일입니다(4:2).
  마귀는 인간지식을 끼고도 역사하는 것이니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이 인류가 당하는 범죄입니다. 인간이 죄를 취급할 수 없고, 정당화시키는 것이니 이것을 가르쳐 흑암이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아니고는 마귀를 멸할 자는 인간에게 전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다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없애게 하는 일은 죄악의 권세를 깨뜨리는 속죄의 법으로만이 개인 개인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 주님이 나타나서 행하신 일은 각인의 중심 속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역사를 없애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름 타고 다시 올 때 전 세계의 인류를 미혹하던 마귀를 없애는 반면에 그 때까지 회개치 않고 마귀에게 속하여 사는 자는 전멸되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첫째, 인격을 이루기 위한 것이요, 둘째,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계20:1-3).

* 3:9~10.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 강해) 하나님께로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씨를 마음에 받아서 중심에서부터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할 때에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역사해 준 것을 목적한 것이니 중심에 죄를 계획적으로 품고 다니는 것은 그 영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사람은 절대로 고의적인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의를 행치 아니하고 남을 살려 보려고 하는 미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범죄라는 것은 주안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마음 가운데 더러운 마음이 생길 때 벌써 주 밖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주안이 아닙니다. 고의적으로 죄를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는 자는 중생 받은 자가 아닙니다.

* 3:11~12.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 강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도덕에 국한된 형식을 취할 수 없고 중심에서부터 자동적으로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니 형제를 미워하고 죽이던 가인과 같은 죄는 그 자체가 악한 자에게 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악마적인 행동입니다. 중생 받은 사람이 계획적으로 남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아담 같은 범죄는 우리 중생 받은 자에게도 있습니다. 아담 같은 범죄는 남에게 끌려서 지은 죄입니다. 영이 죽을 수 없으나 가인의 범죄는 마귀 편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종을 대적한 자이며 영이 죽었습니다.
  남이 은혜 받고 잘되면 좋아하고 기뻐하면 하나님 편입니다. 남이 은혜 받고 잘되는 것 미워하면 마귀편입니다. 지금 가인과 아벨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하고 헐뜯고 다니면서 공격해도 상대하지 말고 위하여 기도할 것뿐입니다. 가인이 동생 죽여서 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악에 속해서 동생을 죽였습니다.

* 3:13~15.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강해)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미움을 받더라도 그것을 이상히 볼 것은 아닙니다. 필연적인 결과로 되는 것이니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이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갈 길을 걷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까지 사망 안에 있는 영입니다. 그 영 자체는 살인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에 생명이 온 증거입니다. 동역 자를 헐뜯으면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형제의 약점을 자꾸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업에 방해자입니다. 어려운 일당하고 약해서 쓰러질 때 울면서 싸매야 진짜입니다. 교역자는 양떼가 아무리 잘못해도 치면 안 되고 은밀한 가운데 기도하고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양떼를 기르려면 정말로 아껴야 됩니다. 진리를 대적하면 용납할 수 없어도 진리를 바로 믿는 자는 실수 있어도 아껴서 은혜 받게 해야 합니다.

*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 강해)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보다도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싸워 준다는 것이 사도적인 신앙 사상입니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주의 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기독교 사랑의 본질이며 주님의 심정이며 사도적인 사상이며 진짜 사랑입니다. 주의 종은 양떼 위해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 3:17~18.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 강해) 그러므로 형제의 궁핍을 보고 자기 재물이 있으면서도 도울 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다고 볼 수 없고 형식에 불과한 외식이 될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이 주님의 교훈인데 물질을 가지고도 형제를 살려 보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사랑이 없는 자입니다.
* 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 강해) 진리란 자체는 남을 살려 보려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주님과 하등에 관계가 없는 것이니 누구든지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자는 주 앞에서 굳세게 역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 할 때에 주님은 중심을 보고 들어 쓰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심 속에 남을 살리려고 목숨을 바친 자는 굳세고 강한 사람입니다. 실천은 못해도 중심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굶어도 죽어도 주의 것이니 하나님 마음대로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나가면 됩니다. 남 살려 보려고 애쓰고 배고프고 굶고 욕먹을 때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성신은 남을 살려 보려고 하는 자에게 오십니다.

* 3:20~22.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강해) 우리는 주의 종이니 마음에 거리끼는 일을 가지고는 도저히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거리낌 없이 일하는 종은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특권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응답을 못 받는 것은 그의 기뻐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히려 슬퍼 할 것입니다. 담대하게 구하고 구할 때마다 응답을 받게 됩니다. 마음에 꺼리는 것이 없으면 은혜가 옵니다. 양심에 거리끼는 죄 회개하면 담대해집니다. 성의껏 애써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마음이 납니다. 기도는 실천이 있으면서 구해야 응답이 옵니다. 시간, 돈, 물질, 몸, 마음, 잘 하면 응답입니다. 야곱의 원통한 사정을 하나님만 아십니다.

* 3:23~24.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강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것을 주겠다는 약속이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시되 인간을 구원한다는 그 진리에 따라 주는 것이니 당신의 신을 보내되 당신이 하실 일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완전한 자를 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한 자를 위하여 보냄을 받은 성령이니 누구든지 남을 살려 보려는 심정으로 나아갈 때에 성령은 강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우리는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니 주의 일이라는 것은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살려 보려는 자는 주안에 있는 자입니다. 항상 성령이 우리 안에 오게 됩니다. 남을 살려 보려는 불타는 마음이 없이는 성령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남을 살리고자 하는 도수에 따라서 주안에 깊이 들어갑니다. 은혜 위에 은혜, 믿음 위에 믿음, 지혜 위에 지혜, 남 살리려고 하면 전부 상급이 됩니다.

 # 담대함을 얻은 자의 기도(요일서3:13~24).
  하나님은 거짓이 없는 신이시요, 능력이 무한한 신이신 지라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에게 역사하는 신이십니다. 기도하는 것은 마귀와 싸우는 전쟁에서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해줄 줄 믿고 구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세상일에 끌리지 말고, 담대히 믿고 구하는 자라야 큰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떤 자라야 담대함을 얻을 수 있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16-19).
  형제를 해치고자 하는 자는 비겁한 자요, 형제를 살리고자 하는 자는 담대한 자입니다. 왜냐 할 때에 형제를 해치려는 자는 그 마음이 은혜가 떠나고 극도로 고통이 있고,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은 그 영이 활동을 못하는 증거입니다. 영이라는 것은 남을 살리고자 하는 일에만 활동하는 것이요,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적에 이것은 육의 정욕을 따라오는 것이니 영에 따라 움직이는 자는 담대함을 얻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을 따라 움직이는 자는 기도의 힘을 잃고 극도로 약한 자리에 떨어지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마음이 불탈 때에 하늘로부터 오는 큰 힘을 얻게 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싸울 적에 구하는 대로 응답이 나리는 것입니다.

2. 양심에 가책이 없게 하는 자입니다(20-21).
  사람이라는 것은 양심이 있는 것이니 누구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할 때에 자동적으로 약해지고 겁이 나는 마음이 생기므로 그 사람은 하나님을 상대할 수 없고, 사람 앞에 보이려는 가면을 쓰게 됩니다. 이렇게 되므로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사람의 눈을 맞추어 일을 해 보려고 할 때에 그 사람은 기도할 수 없는 영이 되어 아무런 활동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회개하고,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보다도 “하나님이여, 나를 아시나이다.” 라는 양심에서 나아가는 자라면 그 영은 하나님과 상대되는 심령으로 나날이 소성을 받아 담대함을 얻는 용사가 되어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의 생활에서 야곱과 같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지는 승리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에게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할 때에 용서 없이 징계를 나리는 것은 구하는 대로 주기 위한 목적이니 언제나 양심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을 상대하는 생활이 있다면 기도의 큰 열매를 가져오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인격을 찾지 않고, 사람 앞에 담대히 서려는 수단을 부린다는 것은 큰 과오를 범하는 근본이 됩니다.

3. 주안에 거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22-24).
  인간이라는 것은 주님 품안을 벗어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는 타락의 본질이요, 사망의 법인 마귀를 벗어날 수 없는 죄의 생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15:6보면 “사람이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열매 없는 나뭇가지같이 되어 불에 사름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맡긴 사명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자라야 주는 그 안에 있고, 그는 주안에 있어서 담대한 사람이 되는 동시에 주님 가신 길을 가는 실천이 있고, 주님께서 가르친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로서 이루어지는 기도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최고 인격은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는 것이니 이러한 자라면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 기독교는 담대함을 얻어 기도로 승리하는 것이 있으므로 흑암의 권세 아래서 죄인들을 해방시켜 천하의 교회를 확장시켰고, 종말에도 담대함을 얻은 자들이 기도로 승리할 때에 세계를 정복하는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됩니다. 누구든지 주안에 거하는 자라면 주의 임하시는 날에 담대함을 얻는 동시에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입니다(요일2:28). 언제나 하나님은 원수의 세력을 강하게 하는 것은 담대함을 얻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 승리하게 하기 위한 선한 방법이니 우리들은 이 시대에 담대함을 얻어서 기도로 승리하는 용사가 되어야만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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