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생명은 많고도 죽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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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5-02 11:37 조회1,0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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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생명은 많고도 죽을 세상
이 세상은 생명이 가득한 세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죽음이 가득한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바로 하면 살 수 있고 바로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거침으로 영생과 멸망으로 갈라서는 가장 복잡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옛날 공자도 순천자는 살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지만 공자도 죽었고 석가는 말하기를 선한 일을 많이 하라고 대자비를 말했지만 그도 죽은 것입니다. 누구나 다 살기를 위하여 도를 찾고, 살기를 위하여 빵을 찾고, 살기 위해서 과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이 살기 위하여 애쓴다는 것은 인간의 생활이 완전한 생활은 아닙니다.
완전한 생명을 가질 적에 완전한 인격이 있고, 완전한 인격을 가질 적에 완전한 생활이 있고, 완전한 생활이 있으므로 완전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생명을 가져야 할 것이냐는 것을 바로 깨닫고 받아 체험하는 것이 참된 종교 신앙의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 생활을 하므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보다도 참된 생명을 찾으므로 올바른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인의 올바른 노선이 되고 활동을 바로 함으로써 살 수 있다는 것보다도 올바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격을 먼저 찾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인간 생활의 정로가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이 삶의 길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은 인생 생활의 원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생명을 찾지 못한 종교와 또는 참된 인격을 찾지 못한 사회 활동이라는 것은 오히려 어지러운 세상을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일에 생명은 많으나 죽을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여야 생명을 잃지 않고 사망을 면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사망이 없는 생명을 받아야 됩니다.
이 생명이라는 것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자를 통하여 받는 생명입니다. 그러면 사망의 권세라는 것은 마귀에게 있고 사망을 이기는 생명의 역사는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 하여도 사망을 이길 수 없는 생명은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것이요, 사망이 없는 생명을 받은 자는 비록 적은 것 같으나 최후에는 승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없는 생명은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이니 그 생명을 믿음으로 받은 자로서 움직일 때에 완전한 인격도 생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2. 생명의 법에 의한 활동이 있어야 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법이 없는 활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망의 법에 속한 활동이냐, 생명의 법에 속한 활동이냐 하는 것에 의하여 인간들은 종국을 맺게 될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인간은 사망의 법에 종 된 생활을 하면서 살아 보겠다고 하는 자들이요, 가장 지혜로운 자는 생명의 법에 종 된 생활을 하면서 초인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3. 용사적인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금일에 모든 사람이 세 가지로 흐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사적인 투쟁에도
첫째 : 자기의 주권을 찾기 위한 투쟁도 있고,
둘째 : 남을 섬기기 위한 투쟁도 있고,
셋째 : 남을 살리기 위한 투쟁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물들은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싸워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초인간적인 용사의 투쟁도 있으니 이 투쟁은 인간의 주권보다도 인간 주권을 지배할 수 있는 하늘의 주권을 위한 투쟁이며 인간의 것을 섬기는 것보다도 인간을 초월한 대상자를 섬기기 위한 투쟁이며 인간의 힘으로 살리는 것보다도 인간 밖에의 능력과 권세로 남을 살리기 위한 투쟁이니 이러한 용사라야 완전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용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끝으로 생각할 것은 생명은 많으나 죽을 세상을 따라간다든지 또는 사모한다든지 하는 인격이라는 것은 소극적인 인격인 것이니 생명이 많은 동시에 사망이 없는 세계를 향하여 돌진하고 사모하고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 완전한 생명에서 완전한 인격으로, 완전한 인격에서 완전한 생활로 들어가는 동시에 새 시대를 정복하는 열매를 이룰 것입니다.
이 세상은 생명이 가득한 세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죽음이 가득한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바로 하면 살 수 있고 바로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거침으로 영생과 멸망으로 갈라서는 가장 복잡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옛날 공자도 순천자는 살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지만 공자도 죽었고 석가는 말하기를 선한 일을 많이 하라고 대자비를 말했지만 그도 죽은 것입니다. 누구나 다 살기를 위하여 도를 찾고, 살기를 위하여 빵을 찾고, 살기 위해서 과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이 살기 위하여 애쓴다는 것은 인간의 생활이 완전한 생활은 아닙니다.
완전한 생명을 가질 적에 완전한 인격이 있고, 완전한 인격을 가질 적에 완전한 생활이 있고, 완전한 생활이 있으므로 완전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생명을 가져야 할 것이냐는 것을 바로 깨닫고 받아 체험하는 것이 참된 종교 신앙의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 생활을 하므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보다도 참된 생명을 찾으므로 올바른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인의 올바른 노선이 되고 활동을 바로 함으로써 살 수 있다는 것보다도 올바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격을 먼저 찾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인간 생활의 정로가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이 삶의 길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은 인생 생활의 원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생명을 찾지 못한 종교와 또는 참된 인격을 찾지 못한 사회 활동이라는 것은 오히려 어지러운 세상을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일에 생명은 많으나 죽을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여야 생명을 잃지 않고 사망을 면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사망이 없는 생명을 받아야 됩니다.
이 생명이라는 것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자를 통하여 받는 생명입니다. 그러면 사망의 권세라는 것은 마귀에게 있고 사망을 이기는 생명의 역사는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 하여도 사망을 이길 수 없는 생명은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것이요, 사망이 없는 생명을 받은 자는 비록 적은 것 같으나 최후에는 승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없는 생명은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이니 그 생명을 믿음으로 받은 자로서 움직일 때에 완전한 인격도 생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2. 생명의 법에 의한 활동이 있어야 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법이 없는 활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망의 법에 속한 활동이냐, 생명의 법에 속한 활동이냐 하는 것에 의하여 인간들은 종국을 맺게 될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인간은 사망의 법에 종 된 생활을 하면서 살아 보겠다고 하는 자들이요, 가장 지혜로운 자는 생명의 법에 종 된 생활을 하면서 초인간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3. 용사적인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금일에 모든 사람이 세 가지로 흐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사적인 투쟁에도
첫째 : 자기의 주권을 찾기 위한 투쟁도 있고,
둘째 : 남을 섬기기 위한 투쟁도 있고,
셋째 : 남을 살리기 위한 투쟁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물들은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싸워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초인간적인 용사의 투쟁도 있으니 이 투쟁은 인간의 주권보다도 인간 주권을 지배할 수 있는 하늘의 주권을 위한 투쟁이며 인간의 것을 섬기는 것보다도 인간을 초월한 대상자를 섬기기 위한 투쟁이며 인간의 힘으로 살리는 것보다도 인간 밖에의 능력과 권세로 남을 살리기 위한 투쟁이니 이러한 용사라야 완전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용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끝으로 생각할 것은 생명은 많으나 죽을 세상을 따라간다든지 또는 사모한다든지 하는 인격이라는 것은 소극적인 인격인 것이니 생명이 많은 동시에 사망이 없는 세계를 향하여 돌진하고 사모하고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 완전한 생명에서 완전한 인격으로, 완전한 인격에서 완전한 생활로 들어가는 동시에 새 시대를 정복하는 열매를 이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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