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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서 변론 증거

54. 스가랴 변론 증거. 9장. 평화의 왕, 만왕의 왕. 그리스도의 화평과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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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9-16 10:26 조회2,495회 댓글0건

본문

54. 스가랴 변론 증거. 9장. 평화의 왕, 만왕의 왕. 그리스도의 화평과 심판. 빛나는 일.(슥9:1~10)

  # 세상의 지혜와 은금이 소용없음, 악의 세력은 완전히 없앰, 나귀타는 겸손한 왕이심, 이방에게 화평의 복음을 전함,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헬라를 치게 됨, 남방 회리바람처럼 행하심, 양떼 같이 보호하고 구원함, 면류관의 보석같이 빛남 #

   본장은 8장과 같이 이 땅에 새로운 시대가 올 때 평화왕국의 왕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귀를 타고 오시는 주님은 겸손과 평화의 왕뿐이 아니라 심판주 예수님도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심판하고 평화의 새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적 이스라엘 백성은 심판주 예수님의 역사는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왕국건설입니다.(이9:6~7)

* 요절: 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 강해) 완전 평화왕국의 지도자는 가장 겸손한 자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 슥9:1~4.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은즉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라.
* 강해) 이 땅에 새로운 시대가 올 때 평화왕국의 왕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친 말씀인데 이 평화의 왕은 불의한 자의 호화로운 것을 용납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만왕의 왕이 세계를 통치하는 데는 이방 세력을 모두 없애고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으로 새 시대를 이룹니다. 이방 세력은 은금이 티끌같이 많지만 다 없앱니다. 새 시대는 백성과 왕족이 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왕을 섬깁니다. 이방 중의 이방은 무신론 유물론 사상의 공산당 마귀 세력입니다.
 
* 슥9:5~8.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 강해) 완전 평화라는 것은 악의 세력과의 평화를 가질 수 없고 악의 세력을 없이하므로 지상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덮어 놓고 평화왕국을 이룬다는 것이 아니고 한번 복음을 전해 놓고 안 들을 때에는 악의 세력을 없이합니다.
  이방중의 이방은 무신론 유물론의 악인의 공산당이며 죄인은 믿지 않는 자입니다. 평화왕국 새 시대에는 원수의 세력을 완전히 없앱니다.

*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 강해) 완전 평화왕국의 지도자는 가장 겸손한 자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는 평화의 왕이라고 선지가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 된 적이 없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올라 갈 때에 즉시 왕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만찬 때에 십자가에 죽고 삼일 만에 살아난다고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안 된다고 하니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구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이루는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알려주셔야만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심판주의 역사를 모르고 유대인이 실패했고 흑암에 빠진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이 되었다면 성경이 그대로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귀를 타신 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을 보인 것이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길은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이루기 위한 왕으로서 상경했던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은 그때 단번에 예수님이 왕이 되는 줄 알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모든 대중은 예수가 왕이라고 호산나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어긋났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볼 때 절망 낙심해서 원망하고 욕하며 침을 뱉고 비웃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즉 진리를 모르는 인간들이 호기심 명예심에서 날뛴 것뿐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자기네 나라에서 왕이 되고 세계를 다스린다는 신앙관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본문 성경인 슥9장 9절 이하를 똑똑히 알았던들 그렇게도 낙심해서 넘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성경에서 일점일획도 어기지 못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을 자기 욕망에 채우는 허영심에서 날뛰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스가랴9:9에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온다는 것만 보고 그 아래는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금일도 성경을 이와 같은 상태에서 자기 주관에 붙이는 신앙이란 어려운 일이 올 때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나사렛 동네의 목수 생활을 거쳐 불쌍한 양떼를 위하여 쉬지 못하고 일하는 길을 거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모든 유대인들은 호산나를 부르며 “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라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힐 적에 그들은 훼방을 하고 조롱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네가 왕이라면 너를 때리는 우리는 누구냐” 하면서 예수를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일언반구에 불평의 말 한마디 없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말씀이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화목제를 드리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요12:12~15)

* 슥9: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 강해) 이 평화의 통치는 민족적 국경에 차별이 없는 세계적인 평화를 가르치되 하나님의 화평의 도를 전하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에 화평이 있고 인간과 인간과에 화평이 있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세상에 전쟁이 없는 평화왕국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인데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하고야 그 정권이 세계 통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은 지혜, 지식, 능력, 권세가 옵니다. 예수님과 화평하면 하나님께 있는 것 다 우리에게 옵니다. 기도 응답 없는 것은 하나님과 화평치 못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면 하나님과 원수요, 사명 맡아서 사명 않고 잠만 자면 하나님과 원수요, 무장한 사명자가 성경 잘 안보고 기도 않고 태만하면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화평한 사람은 일거동작 말 한마디 무엇이든지 상급이 됩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화평한 인격을 이룬 종의 수가 차면 세상 끝입니다. 화평을 전하고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통일의 지상 천년평화왕국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리스도로 먼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한 후에 그 정권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르고 세계를 통치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방인을 짐승같이 보는 과오를 범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교인들은 이방은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흑암에 빠져 있던 것입니다. 만일 바리새교인들이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았던들 바울은 그다지 박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위 전통을 찾는 바리새교인들은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하여 염병 같은 놈이라고 했습니다. 금일도 성경을 자세히 읽지도 않고 남을 비판하는 자는 바리새교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잃었던 백성을 찾는데 있어서 아무리 과거에는 이방과 유대가 원수였지만 이방인을 압박하던 유대인들이 사도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이방 사람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화평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율법 시대에는 유대인이 이방 사람은 대하지도 않고 좌담을 하거나 음식을 함께 먹은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통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는 베드로가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묵시를 보았습니다. 이 묵시는 기도 중 하늘로부터 둥근 보자기가 내려 왔는데 보자기 속에 더러운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소리가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는 음성이 2. 3차 들려왔습니다. 그때에 문 밖에서 베드로를 찾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이방 사람 고넬료가 보낸 하인이었습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의심 말고 따라가라는 지시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순종의 걸음을 걸어 이방 사람의 집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놓게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말하기를 자기 집에서 기도를 하던 중 천사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해변 욥바 땅 피장이 시몬의 집에 베드로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을 데려다 복을 받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오시니 감사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입을 열어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게 했으니 이 복음을 들어라.” 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했을 때에 그 말을 듣던 이방인들이 즉시 성신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성신을 부어주니 우리가 어찌하여 이방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느냐는 생각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여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이로서 이방에 화평을 전한다는 말씀이 오늘날 응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14장 12절 계명성도 천사의 타락이 아닌 그 당시 바벨론의 왕의 교만함과 비참한 최후를 들어 인간 종말의 북방 이방인 공산당의 패권자들의 교만과 종말을 참혹을 얘기 한 것으로 천사의 타락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한 사40장의 3절에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는 은혜시대 천국복음(마24:14)의 시작을 9절에 아름다운 소식은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말세 복음의 영원한 복음(계14:6)을 말한 것인데 영혼 구원의 천국복음만 믿으면 안 되고 영육구원의 예언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 슥9:11~13.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 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 강해) 이 평화라는 것은 언약의 피로 죄의 구렁텅이에서 해방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되 완전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약의 피로 사망에서 올라 왔습니다. 우리를 해방시키는 데는 죄의 구렁텅이에서 죽게 된 것을 예수님의 언약의 피로 구원하고 심판한 다음에 새 시대가 온 다는 말입니다. 시온의 자녀들이 헬라 자식을 속화되고 부패한 이방을 때려 부순다는 말입니다. 유다로 당긴 활을 삼는 다는 것은 백마 탄 자가 활을 가졌다(계6:2)는 말대로 인 맞은 십사만 사천 명의 변화성도 무리(계7:2~4)로서 지상강림하시는 주님의 백마 탄 군대(계19:14)을 이루어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종 승리하여 천년평화왕국에서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할 승리 용사들입니다.(계20:4) 삼대 무장을 갖춘 변화성도가 세상에 속화된 문명(헬라)을 치게 하여 세상을 심판하고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무릇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치고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 일한대로 갚고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니라.(렘50:29)
@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6:2)
@ 네가 본바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단8:20~21)
@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내가 가로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매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치려 하느니라. 하시더라.(슥1:18~21)
@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7:2~3)

 & 언약의 피로 구원하는 역사.(슥9:11-12).
   하나님이 이 세계의 땅을 빛나게 하는 역사는 언약의 피를 인하여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올라오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성경을 모르는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그 피로 죄에서 구원하는 일이 있고야 예수가 왕이 된다는 것을 믿지 않고 그대로 살아서 왕이 된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금일까지 이루어진 역사는 9절-12절까지 해당된 역사입니다. 화평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자는 다 구원한다는 언약의 말씀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그러나 화평을 전하여도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 언약을 믿지 않는 자는 용서 없이 없앤다는 것이 곧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이방을 치는 일.(슥9:13)
 시온의 자녀가 이방을 치는데 대하여 하나님은 원수를 용서하는 때도 있고 원수를 갚는 때도 있습니다. 온 세계만방에 화평을 전할 때는 원수를 사랑하는 화평의 복음입니다. 이것은 왜냐 할 때에 죄인을 불러서 천국의 자녀를 채우는 일이니만큼 누구든지 한사람도 원수를 갚는 일은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가 찬 후인 즉 화평을 믿지 않는 이방을 몽땅 없애버리는 것을 진노의 날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킨다는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제 진노의 날에 남은 종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리가 있습니다.
  1)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은 모든 선지 시대와 같이 육적 이스라엘이 이방을 치듯이 말세에 하나님의 사람을 들어서 마귀의 이방 세력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2) 이방을 없이하는 것은 지상 왕국 평화 왕국 이루기 위한 목적입니다.
  이날까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때요, 종말의 진노의 날에 세계적인 지상 평화 왕국을 이루는 목적이니 하나님의 대적은 하나도 남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진노의 날이라는 것은 사랑을 베풀어도 받지 않는 것을 없이하는 것을 진노가 임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를 이루기 위해 나타남. 종말에도 그처럼 베드로 앞에 아나니아가 속이다가 죽음같이 종말도 알곡만 남게 하고 쭉정이는 없어집니다.(죽음).

 &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켜 이방을 치는 역사.(슥9:13-14).
   이것은 종말의 사명을 가르쳐 말한 것입니다. 이날까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서 죄인을 구원하는 역사는 원수를 치는 역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원수의 세력을 치되 용사의 칼같이 역사해서 치는 것입니다.
  만일 금일에 종말적인 역사가 있어야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헬라적인 문명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협상적인 기독교 사상운동을 한다면 이 말씀과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 슥9:14~15.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 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 강해) 왜냐하면 아무리 인간에게 참된 해방을 주어서 하나님과 인간과에 평화를 일으키는 복음을 전했으나 그 복음을 받지 않는 자는 용서 없이 없애는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방 편에서 역사해서 백마가 승리케 합니다.
  요즈음 공산당과 협상하는 협상파는 이것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이방(공산당) 때려 부순다고 하는데 협상하고 타협하면 멸망입니다. 천사의 보호 역사가 같이 하는 것이며 원수를 짓밟고 전멸시키는 환란 때라 흘린 피가 많다는 것입니다.  대접 재앙과 아마겟돈 전쟁 때입니다.
   아무리 화평을 전해도 짐짓 하나님을 대적하고 심지어 무신론 사상을 가지고 진리를 대적하는 세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들어 이방을 치게 하되 하나님은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북방을 때려 부수는 일을 뜻했습니다. 어느 선지나 종말에 기독교의 원수는 북방이라고 했으니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북방을 때려 부수는 것이 아니요 북방과 타협하는 것을 말하고 붉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를 없애는 일은 북방을 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북방 세력을 치는 일이 진노의 날에 올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의 세력을 용납지 않고 치는 역사를 할 때 당신의 백성이 절대적으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호위를 한다는 것입니다.(단12:1). 다니엘 선지도 북방의 세력이 남방을 침노하는 때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호위하기 위하여 미가엘 천사를 동원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호위해 주겠다는 데도 불구하고 원수를 무서워하고 원수와 타협을 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날까지는 화평을 전하는 때이므로 원수를 사랑했지만 진노의 날에는 원수를 몽땅 없애는 날이므로 피로 이 땅을 적시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의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세상을 모두 없이할 때에는 피가 흐르되 비참하게 될 것을 가르쳤습니다.

@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12:1)
@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1)
@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 같은 것이 자고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욜2:1~2)
@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계16:17~18)  

 # 여호와의 땅에 빛날 일.(슥9:9~16).
   하나님은 당신의 땅에서 빛나게 살 수 있는 백성을 위하여 어떻게 역사한다는 것을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땅에서 빛나게 되는 일을 목적한다는 이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신자가 죽어 천당만을 목적하고 이 땅에서 빛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는 육적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을 받고 돌아올 때 묵시로 본 것은 전부가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되는 일을 보여준 묵시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해서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시대와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와 하나님의 역사를 잘 구분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되는 일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기록할 때 어떻게 여호와께서 역사하므로 여호와의 땅에 빛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본문은 순서 있게 말한 것이니 우리는 빛나는 일의 축복을 받으려면 절대 이방의 헬라적인 사상과 맹렬히 싸우는 용사가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헬라라 하는 것은 속화된 문명을 가르친 것이니 다니엘 8장에 바사의 문명을 수양으로 말했고 헬라의 문명을 염소로 말한 것은 사상을 보여준 묵시라고 봅니다. 바사는 스룹바벨의 역사를 적극 후원하고 승리하도록 스룹바벨에게 권리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헬라를 친다고 한 것은 종말의 기독교의 헬라적인 사상이 교회를 망친 것이니 이것을 용납지 말고 쳐야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금일의 종교 위기는 헬라적인 사상이 강단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 슥9:16~17.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
* 강해) 이와 같은 심판이 올 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새 땅의 축복을 받도록 하되 극도로 아름다운 시대를 이룹니다. 새 시대는 고기 안 먹고 곡식만 먹어도 강건합니다. 풍부하고 땅이 효과를 발하니 곡식과 포도주로 강건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구원을 말한 것은 아니고 적군인 원수의 피가 강같이 흐를 때 자기의 사람을 목자가 양을 보호함 같이 구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때 구원을 받는 자는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고 형통하며 아름다움이 크게 이루어지므로 소년과 처녀들이 건강을 얻어 복된 땅에서 장수하며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원수를 없이하므로 이 땅은 복된 땅이 되어서 모든 생산의 큰 축복을 받아 즐거움을 누리는 새 시대가 옵니다. 이것은 영적 구원을 말한 것은 아니고 적군인 원수의 피가 강같이 흐를 때 자기의 사람을 목자가 양을 보호함 같이 구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때 구원을 받는 자는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고 형통하며 아름다움이 크게 이루어지므로 소년과 처녀들이 건강을 얻어 복된 땅에서 장수하며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원수를 없이하므로 이 땅은 복된 땅이 되어서 모든 생산의 큰 축복을 받아 즐거움을 누리는 새 시대가 옵니다.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12:3)
@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계6:13) 
  
*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동시에 죄의 세력을 없이 하고 새 시대를 이루는 데는 속죄를 받은 자만이 복을 누리는 시대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화평을 전할 때인 은혜시대가 있고, 환란시대인 싸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회개치 않을 때는 심판하고 새 시대의 지상평화왕국이 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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